때로는 16부작짜리 드라마보다, 2시간짜리 영화보다 단 몇십 초 남짓의 CF가 더 인상적으로 남을 때가 있다. 아마도 지금 소개하는 CF들이 배우들에게 그렇지 않을까. 광고 창작자의 의도는 어땠는지 몰라도 배우들에겐 흑역사로 남겨진 CF들을 모았다. 잊을만하면 다시 꺼내서 미안하니까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보고 잊어주자.

※ 이 글은 간접광고의 의도가 전혀 없음을 밝힙니다.

​

​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 CF (옆에서 이준기에 반하는 빨간색 옷을 입은 모델은 송하윤이다)

이준기 |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
“미히녀는 서억류를 좋아해~♪” 2006년 CF다. 무려 13년 전 광고지만 사진 속 이준기 얼굴만 봐도 자동 음성 지원되는 CM송이다. 둘러싼 여자 모델들보다 더 예쁜 이준기가 피아노를 치며 가냘픈 목소리로 CM송을 부른다. 구성진 꺾기와 삑사리를 넘나드는 첫마디 음절부터 귀를 사로잡는다. 영화 <왕의 남자>, 드라마 <마이걸>로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얻었던 이준기의 출연, 이상하지만 한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CF 컨셉이 화제 되며 음료 신제품 매출 최단기간 돌파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당시 팬심 가득했던 기자 역시 이 CF를 보고 꽤나 사 먹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 흑역사는 최근까지 이준기를 따라다니며 2018년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이 노래를 다시 한 번 부르게 만들었다. 아마 이제 해탈한 듯싶다.

유승호, 여진구 | 초코하임
국민 남동생 유승호, 여진구에게 가혹한 흑역사를 선사한 초코하임. 두 CF 모두 ‘초코하임은 얼려먹는 것이 꿀맛’(이렇게 먹으면 맛있긴 하다만)이라는 마케팅 포인트를 강조한 컨셉으로 만들었는데 어쨌든 보는 사람 얼어붙게 만드는 CF를 탄생시켰다. 빙하를 배경으로 초코하임 가득 담긴 냉장고 옆에서 흰옷을 입고 유승호를 춤추게 하는 것에 만족하지 못했는지 여진구 편 “씽씽 얼려라~”에는 한때 유행했던 셔플 댄스를 더해 보다 강도 높은 흑역사를 만들었다. 복붙된 단체 여진구들이 화면에 박제된 듯한 초코하임 박스를 잡고 열심히 춤춘다. 국민 남동생 칭호를 물려받으면서 이런 흑역사 CF까지 물려받았을 줄 아마 몰랐을 것.

​

​여진구 아딸 CF

​

​

아. 자매품으로 아딸 CF에서도 여진구의 셔플댄스를 볼 수 있다. (아마도) 떡볶이 색을 상징하는 의미를 담아 빨간색 바지를 입은 듯하다. 춤추면서 애써 웃고 있지만 쑥스러워 하고 있다는 것이 여기까지 느껴진다. 분명 배우인데 광고 크리에이터들은 왜 이렇게 여진구를 춤 못 추게 해서 안달이었던 걸까.

​

고경표 | 마몽드
요즘같이 미세 먼지 많은 날엔 ‘연꽃 클렌징 요정 고경표’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박신혜가 잠든 사이 팅커벨처럼 나타난 요정 고경표. 여기까진 별로 웃기진 않다만, 갑자기 분위기 발리우드 영화행. 인도풍 영화가 흘러나오며 요정 박신혜와 요정 고경표가 듀엣으로 춤을 춘다. 이걸 인도 춤이라 해야 할지, 아이돌 춤이라 해야 할지 애매모호하다. 그 와중에 백댄서 요정들도 등장한다.    

이정재 | LG(금성) 전자 3DO 얼라이브
좀 더 과거로 가볼까. 광고 퀄리티에서 이정재가 동안이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이 광고는 무려  LG전자가 금성 전자였을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이정재가 드라마 <모래시계>로 막 뜰 당시에 찍었던 SF(…) 장르의 CD 게임기 CF다. 은색 투구를 쓴 채 “우와앗! 이거 영화야 게임이야. 야핫!”라고 내뱉는 감탄사와 후반부 “단 1초도 방심할 수 없어요” 카피가 이 광고의 핵심. 장면 하나하나가 단 1초도 방심할 수 없게 만드는 CF였다.

서우 옥메와까 CF

서우 | 옥메와까​

또 한편의 근 미래적 감성 CF가 2000년대에 한 번 더 나왔다. 묘하게 중독성 있는 비트에 “한번 먹고 꽂혀버렸어 옥메와까에~”로 시작되는 마법 주문 같은 가삿말이 펼쳐진다. “옥동자 메카톤바 와일드바디 까마쿤 좋아”라는 롯데제과 아이스크림 품목명을 비트 위에 반복적으로 얹었을 뿐인데 중독성이 남다르다. 나름 요즘 신조어처럼 품목별 앞 글자만 따서 이름 붙이는 센스도 발휘했다. 당시 4차원 이미지를 구축하던 서우와 무척 잘 어울렸던 CF. 지금 다시 보니 그렇게 흑역사 같지도 않다.